살다 보면 불편하고 부당한 일을 많이 겪습니다.
그때마다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도 방법이겠지요.
하지만 누군가는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하려 애쓸 때 세상은 조금씩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뭐 엄청나게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음악에 관한 것 입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세월 다듬어진 이론과 규칙은 그 자체로 완벽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왜 그렇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이 종종 사라져 있습니다.
저는 오늘 그 질문을 다시 꺼내 보고 싶습니다.
문제 제기라기보다는 조금 삐딱하게, 아니면 다른 각도에서 음악을 바라보려는 시도입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조금 삐딱한 시선” 에서 시작됩니다.
고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음악의 역사 속에서
지금 우리가 배우는 이론이 정착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실험이 쌓여온 결과입니다.
그것은 결국 아름다움에 대한 오랜 추구의 산물일 것입니다.
그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이 글은 쌩초보자의 시선에서,
“이런 접근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이런 시각은 정반합(正反合) 의 이론과 맞닿아 있습니다.
반대를 끄집어내어 더 큰 조화로 나아가는 것.
그게 이 글이 취하려는 태도입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화음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음악 이론에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화음은 3도씩 쌓는다.”
예를 들어 “도–미–솔(C–E–G)”을 쌓으면 C메이저 코드가 만들어집니다.
모두들 아무런 의심 없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에 조금 삐딱한 시선을 던져 보았습니다.
만약 2도씩, 혹은 4도나 5도 간격으로 쌓는다면 어떨까요?
전통적인 화성학은 이렇게 답하겠지요.
“3도는 배음의 조화에 의해 가장 아름답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 말 뒤에는 과학과 수학이 숨어 있습니다.
하나의 음이 만들어내는 진동수, 근음과 배음의 정수비율,
이 모든 것이 ‘아름다움의 근거’로 제시됩니다.
이제는 그것이 너무도 익숙해져
사람들의 귀에는 3도의 관계가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안정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불안정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일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감정, 낯선 조합, 그리고 불협의 떨림이야말로
우리의 감정을 또 다른 세계로 이끌어 갑니다.
“조화는 편안함을 주지만, 불협은 진실을 흔든다.”
3도의 화음은 완벽한 안정 속에서 아름다움을 보여주지만,
그 안정이 때로는 감정을 가두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그 틀을 벗어나려는 욕망을 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입니다.
그는 화음의 진행 대신 소리의 색채(sound color) 를 탐구했습니다.
기존의 화성 이론을 깨는, 매우 과감한 시도였지요.
그의 작품 중 하나인 〈Voiles〉 는
반음이 전혀 섞이지 않은 전음계(Whole Tone Scale) 만으로 구성된 곡입니다.
아래 연주 영상은 피아니스트 Anna Tsybuleva 가 연주한 버전입니다.

Anna Tsybuleva plays Claude Debussy “Voiles”
저는 클래식에는 문외한이지만,
이 곡을 들었을 때 뭔가 방향성이 없고,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끝나는지도 알 수 없는 음악.
그런데 바로 그 ‘부유하는 느낌’이
드뷔시가 만들고자 했던 새로운 감정의 질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런 음악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감각으로 느끼는 음악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화성 진행이나 조성 개념으로 이해하려 하면 잡히지 않습니다.
그저 빛과 그림자가 번지는 듯한 소리의 흐름을 그림처럼 감상해야 하는 것이죠.
쇤베르크는 조성을 해체하며 “불협도 감정의 언어가 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아래 링크는 쇈베르크의 Six Little Piano Pieces, Op. 19 입니다.

Schoenberg: Six Little Piano Pieces, Op. 19 (Jean Louis Steuerman)
재즈 뮤지션들은 9th, 11th, 13th 코드로 3도의 질서를 넘어섰습니다.
아래 곡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결국 전통적인 화성학에 기초한 수많은 곡들은 우리에게 많은 감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음악이란 것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번에 새삼 느꼈습니다.
아마도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찾아보고 공부해 본 덕분이겠지요.
다만, 위의 세 곡은 저에게 여전히 조금 낯설게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