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비판 우주론적 이념에서 발견한 번역상의 의문

순수이성비판의 또 다른 번역상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다음은 해당 문장입니다. (동서문화사 펴넴, 『순수이성비판』 337페이지)

“한편 우주론적 이념에서 발생된 문제는 다만 총체성을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이 경험적 진전에만 관계한다. 또한 이와 같은 총체성은 어떤 경험 속에도 주어질 수 없는 것인 이상, 이미 경험적인 것이 아니다.”

위 문장을 읽다가 접속사 사용이 다소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먼저 우주론적 이념이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칸트의 우주론적 이념은 세계 전체를 하나의 완결된 총체로 파악하려는 이성의 요구에서 발생합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우주의 시작이 있을까?”, “물질의 최소 부품이 있을까?”와 같은 문제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경험을 통해 조건을 계속 추적해 올라가는 탐구와 관련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현상의 원인을 찾고, 다시 그 원인의 원인을 찾고, 또 그 이전의 원인을 찾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탐구를 계속 이어가다 보면 끝없이 더 이전의 조건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 도달하게 됩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위 문장의 의미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주론적 이념은 경험적 탐구를 계속 밀어붙이지만, 절대적인 총체성 자체는 경험 안에서 주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문 번역에서는 중간에 “또한”이라는 접속사가 사용되어 있습니다.

“…이 경험적 진전에만 관계한다. 또한 이와 같은 총체성은…”

문맥상으로는 “또한”보다는 “그러나” 또는 “하지만”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관련 자료를 조금 더 찾아보았습니다.

대표적인 영어 번역본인 Guyer-Wood 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relates only to this empirical regress… But since this absolute totality is not…”

여기서는 분명히 “But”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독일어 원문에 사용된 접속사는 “aber”라는 접속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aber”는 “그러나”, “하지만”이라는 의미로 번역됩니다.

따라서 적어도 이 문맥에서는 “또한”보다는 “그러나”가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철학 번역은 단순히 단어 하나를 기계적으로 대응시키는 작업이 아닙니다. 번역자가 앞뒤 문맥 전체를 고려하여 문장을 재구성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번역본과 독일어 원문을 함께 살펴보니, 이 부분은 한 번쯤 검토해 볼 만한 번역상의 문제로 보였습니다.

아래는 해당 문장이 나오는 원문 사진입니다.

흠~ 재미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이런 부분을 발견하면 또 다른 즐거움이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