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용어에 관하여

개요

철학책을 취미삼아 읽고 있습니다.
플라톤, 니체, 스피노자, 들뢰즈, 한나 아렌트, 그리고 칸트의 책들과 해설서, 유튜브 강의 등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해설서는 그래도 읽을 만하지만, 실제 철학자들이 쓴 원전은 읽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낯선 용어들 때문입니다.
전공자가 아닌 저로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원문 자체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둘 다일 가능성이 크겠지요.

특히 원문을 그대로 옮긴 듯한 표현을 만날 때면
‘이 표현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지금은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읽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읽는 순서가 조금 잘못된 것 같기도 합니다.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을 먼저 읽었더라면
이해가 조금 더 수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판단력비판 위키백과 – 한글판

판단력비판 Wikipedia – 영문판

그래도 그냥 읽고 있습니다.
시간을 쌓아가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조금씩 붙잡아 보자는 생각입니다.

읽는 도중 가장 크게 부딪히는 것은 역시 ‘용어’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의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용어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꾸어 읽는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본 글은 철학 용어 이해에 대한 글 입니다.

용어의 재해석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비판’이라는 용어부터 시비를 걸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비판’이라는 말은
보통 다른 사람이 쓴 글이나 작품을 평가하는 의미로 쓰이며,
그 뉘앙스 또한 다소 부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칸트 철학에서 말하는 ‘비판’은 전혀 다른 뜻입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에서의 ‘비판’은
어떤 개념의 정의와 그 한계를 규정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비판’과는
상당한 의미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점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다시 체계화하는 것도
크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저는 일단 이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다음은 판단력의 분류입니다.

칸트는 판단력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규정적 판단력이고, 다른 하나는 반성적 판단력입니다.

규정적 판단력은 이미 보편적인 법칙이 주어져 있고,
개별적인 사례를 그 법칙 아래에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이 부분은 비교적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문제는 반성적 판단력입니다.
개별적인 사례는 주어져 있지만,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보편적인 법칙이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법칙을 찾아내거나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반성’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물론 단어 자체에는 ‘되돌아본다’는 뜻이 있지만,
일상에서는 흔히 ‘무언가를 잘못한 뒤 돌아본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약간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개념을 조금 바꾸어 읽어 보았습니다.

‘반성적 판단력’
‘탐색적 판단’ 또는 ‘숙고판단’ 이라고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바꾸어 보니
판단을 위해 기준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느낌이 들어
‘반성적 판단’이라는 표현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반성적 판단력은
정해진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가는 판단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걸렸던 표현은 ‘취미판단’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취미’는
대개 여가 활동이나 개인적인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용어가 다소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칸트가 말하는 ‘취미’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저는 ‘취미판단’을
‘미감판단’ 즉 ‘아름다움을 느끼고 판단하는 능력’으로 이해하며 읽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용어를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보았습니다.

맺음말

이 글은 제가 철학 용어 이해를 위해 시도한 방법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작업은 일종의 ‘번역의 재번역’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철학자의 언어를 번역자가 옮겼다면,
저는 그것을 다시 나의 언어로 옮기는 셈입니다.

이렇게 읽다 보니
조금씩이나마 철학이 ‘읽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정확한 이해는 아닐지라도,
이해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방법으로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용어에 관하여”에 대한 3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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